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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기타 ] 부엉이방귀
작성자 촌장  
글정보 작성일 : 2011년 05월 20일 01:16 , 읽음 : 1871
- 속내를 시원하게 내놓으시질 않으시는 일흔 나이를 넘긴 선배님을 만났다.
근래에 '부엉이' 관련 자료를 정리해 두셨단다. 선배님의 마음을 미루어 이해하기를 충분케 하는 글이라 여겼다. 글 쓴 분의 마음도 담고, 우리 전통 문화에 관한 상식을 공유하자는 생각에 이 글을 드리고자 한다. 선배님께 크게 감사드린다.
 - 글 중에 나오는 '동속금언십경'은 선배님께서 청계천에서 구하신 희귀한 책이다. 책이름을 검색어로 글 내용을 찾아 볼 수 있게끔 해 두었다.
부엉이의 상징성
한국인에게 부엉이는 무엇의 상징성인가?
부엉이는 【동속금언십경 ․ 東俗禽言十警】의 10가지 새 중에서 사람의 삶을 마지막 총정리하는 중요한 배역의 새로서 제시되어 있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위에서 투신하는 일이 생겨 부엉이의 상징성은 많은 사람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엉이는 한자로 휴<鵂 : 수리부엉이 휴>이며, 휴류(鵂鶹)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로 수리부엉이, 수알치새, 각치(角鴟)라고도 부른다. 글자를 만들 때의 상징성을 파자(破字)를 통해 알아 보자.
 ◉ 휴(鵂) =휴(休 : ①숨쉴 휴 ②그칠 휴 ③편안할 휴 ④기뻐할 휴 ⑤좋을 휴 ⑥경 사 휴, ⑦말 휴)+새(鳥)
- 휴가(休嘉) : 경사스러움, 또는 그 일
- 휴광(休光) : 뛰어난 공적
- 휴경(休慶) : 경사(慶事)
- 휴덕(休德) : 미덕(美德)
- 휴도(休圖) : 좋은 꾀, 양도(良圖)
- 휴명(休明) : 썩 밝음, 대명(大明)
- 휴범(休範) : 훌륭한 본보기
- 휴조(休鳥) : 길조(吉鳥)
- 휴종(休蹤) : 큰 곤적, 뛰어난 공적
- 휴지(休祉) : 행복, 경사
- 휴창(休暢) : 경사스럽게 널리 퍼짐
- 휴휸(休勳) : 선미한 공훈
동이족의 은(殷) 나라 말기 것으로 보이는 부엉이 모양의 치효존(鴟梟尊 : 미 에일대 미술관 소장. 하남성 팽덕부 후가장에서 대리석 부엉이상이 출토됨. B.C. 1766-1123년)은 부엉이와 뱀이 조각된 청동제사그릇이다. 조상에게 제사를 얼릴 때 썼던 술그릇으로 휴조(休兆:길조)의 경사가 있길 기원하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1. 부엉이는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 때의 왕궁과 절 지붕 용마루 양 쪽 끝에 붙여 세웠던 치미(鴟尾 : 부엉이 꼬리깃)라고 부르는 망새 기와가 있다.
부엉이는 낮에는 숨어서 자고, 황혼 후에 나와 모두가 조용히 잠들었을 때 활동한다. 좋은 일은 백주 대낮에 하지만, 도둑질, 간통 특히, 반역의 음모는 깊은 밤 은밀히 숨어서 모의하며 침략자와 그들의 앞잡이도 이 때 움직인다. 부엉이는 숨어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소리 없이 쥐를 잡아채 듯 잡아 죽이는 나라의 수호신과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백성들이 걱정 없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불침번을 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국경의 전초 기지에서 침투해 오는 간첩을 잡아 내고, 나아가 혼란스러운 나라 간신배들이 설치는 조정에서...'어두운 밤을 지키는 깨어 있는 지성'의 상징이었다.
 물질만능과 사치와 허영. 부귀영화만을 탐하고 이익 앞에 승냥이가 되어 버리는 시대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고 나라의 앞날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잘못을 경고해 주는 지도자를 '부엉이와 같은 영웅(효웅:梟雄)"이라 하였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저서 <법철학> 중에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올빼미(owl)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상징으로 '황혼이 짙어지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에 인용되었다.(부엉이는 올빼미과로 같은 부류이며 Horned Owl. A Koreanscos owl)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박물관에도 올빼미 부조상(B.C. 400년)이 잇다. 이집트의 신전 벽화에도 귀모양 없는 부엉이 그림과 상형문자가 있다. 
2. 부자가 되게 하는 새 부흥(復興)이의 부엉이
  부엉이는 '부흥! 부흥!' 하고 울기 때문에 소리를 들으면 부자가 된다고 하였다. 부엉이의 울음 소리를 한자로 음사하여 '부자가 되게하는 재수 있는 새'라는 뜻으로 '부(富 : 넉넉할 부) + 흥(興 : 일으킬 흥, 일어날 흥)이라 적은 것이다. 부엉이가 울다가 방귀를 뀌면 그 나뭇가지가 부풀어 혹처럼 커진다고 속전하는 데, 이 커진 부분을 잘라 필통이나 재털이 등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면 재수 있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열쇠고리나 장신구에도 부엉이 모양을 조각하여 활용하는 데 같은 뜻이라 할 것이다. 행운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동국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조(1910년) 산신도에는 부엉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호랑이를 내려다 보는 장면이 그려졌다. 수리부엉이(Horned Owl)가 산신도에 그려진 것은 산신신앙 속에 부엉이의 역할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자식을 구하는 5복의 산신신앙은 전통 문화가 불교속에 들어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민속에서 '부엉이가 울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호랑이를 불러 산신이 5복을 내려 주도록 압도하고 도와준다는 암시인 것이다.
  옛날에는 70살이면 고희(古稀)라 햐여 아주 장수한 것으로 크게 잔치를 벌려 기념하였다. 조선 초기 동물화로 유명한 이 암(李 巖 : 1499 - ?)의 그림에는 고양이 그림이 몇 점 전해 온다. 고양이의 한자음은 묘(猫)로써 늙을 모(耄 : 일흔 살이 되어 정신이 혼몽하여 짐)와 유사하다. 모령(耄齡)은 70 - 80세의 뜻으로 즉 수명장수의 노인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래오래 장생하라는 상징이자 수 ․ 부 ․ 귀(壽 ․ 富 ․ 貴)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고양이와 비슷한 소리도 내며 얼굴이 닮은 부엉이를 그려 고희를 축하하기도 하였다. 묘두응(猫頭鷹)은 '고양이 얼굴의 매'라는 뜻으로 부엉이를 말한 것이다. 수명과 부자를 의미하는 기복신앙의 그림이다. 
3. 죽음과 불행을 불러오는 흉조(凶鳥)
  만사에는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나라 양면성이 있어 등장하는 배경에 따라 부엉이는 상서(상서)롭지 못한 죽음을 불러 오기도 하는 흉악한 새로도 인식된다. 어둠속에서 정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화신, 악의 화신으로 죽음과 공포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부엉이는 암흑속에서 소리 없이 닥아와 약한 자를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인다. 예부터 부엉이는 불길하고 음흉한 탐욕의 새로 사람의 넋을 빼앗아 가고 그 울음소리는 죽음의 전조라고도 생각되었다. 도, 국가의 환란이나 재앙을 불러 오는 새로서 그 얼굴 모양은 역적의 효수된 머리 모습으로 보았다. 이 때의 부엉이는 귀모양의 깃털이 없는 올빼미류를 상징으로 삼았고 치효(鴟梟)같은 간악한 인간이라 매도 하였다. 밤에 몰래 날아와 닭 등 가금류를 잡아 가기 때문이다. 민속에는 '올빼미 귀신이 몸에 들어오면, 사철 병석에 눞게 되고, 뱃속에 음식이 들어온다는 생각만으로도 토하는 증상이 나타나며 꾀하는 일마다 뒤틀린다. 눈을 감으면 악몽 속에 헤매며 수명을 재촉한다.' 백중경(百中經)에는 '치호귀신'을 쫓는 주문과 '효신탈식부(梟神奪食付)'가 거식증 치료부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나무에 앉아 있는 이 새의 모양이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백성들에게 경계토록하는 처형의 방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엉이 머리 -치효(鴟梟)의 머리'라는 효수(梟首)는 올빼미 효=목매어 달 효'로 통하게 된 것이다.
  올빼미류는 필요 이상으로 살생을 일삼으며 나라를 소란스럽게 하는 상징이 되었다. 장자(莊子)의 '치휴야소요(鴟鵂夜搔撩 : 부엉이처럼 야밤에 여럿이 들고 일어나 떠듬)에서는 상서롭지 못한 새이고 간악한 사람을 비유할 때 거명하는 새이기도 하다. 반역자, 간도(奸盜)를 상징하기도 한다. 벼슬아치가 올빼미나 부엉이 소리를 들으면 파직되거나 좌천된다고 믿어 주문을 외워 액을 쫓고 면액부적을 지니기도 하였으며 벽사의식을 행하기도 하여였다.(百中經 18쪽)
  자전에 나오는 올빼미 부엉이 치휴류에 대한 설명을 찾아 보면 옛 사람들의 생각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 휴류(鵂鶹) : 부엉이, 각치. 낮에는 장님이고 밤에는 작은 벌레도 잘 찾아 잡아 먹는다.(晝目無所見 夜則至明 : 주목무소견 야칙지명)
-치미(鴟尾) : 궁전의 용마루 양 끝에 올려 장식한 화재예방용 물호랑이. 재앙을 쫓는벽화, 벽사신
-치효(鴟梟) 부엉이, 올빼미. 흉악한 사람의 비유
-치장(鴟張) 부엉이 날개를 활짝 편 것처럼 형세가 국세고 거침이 없는 모양.
  ◉ 올빼미 효(梟) ; ①불효의 새(不孝鳥) ② 머리 베어 달 효 <한서> 현수목상(懸首木上) : 나무 위에 벤 목을 걸어 둠. ③ 건장할 효. 健也(건야). ④영웅 효(雄也(웅야). 효용(梟勇 : 사납고 날쌤). ⑤ 효맹(梟猛 : 건장하고 날램)
  -효수(梟首) :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이 매어 달음.
-효기(梟騎) : 날쌔고 강한 기병
-효수경중(梟首警衆) :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뭇사람에게 보여, 악행에 대한 결과가 어떠함을 깨닫게 하여 경계토록 한다.
-효시(梟示) : 효수하여 경중한다는 뜻으로 뭇사람에게 보여 줌.
-효웅(梟雄) : 사납고 용맹한 영웅.   
4. 바보 부엉이는 부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새
  【동속금언십경 ․ 東俗禽言十警】은 조선시대에 채록된고래의 새의 신화인데 부엉이 휴(鵂)조에서 '부흥(富興)'이라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투기장에서 흥미를 돋구는 개그맨적 싸움꾼과 이재에 밝은 고리대금업자 그의 아내가 구경꾼들을 상대로 승패의 내기를 거는 도박꾼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익을 챙겨 재산이 비누 거품처럼 불어나 마침내 수만금의 거부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자신들은 돈을 뫃으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써 보지도 못하고 상처투성이로 고생만하다가 황폐한 인간으로 그만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한다. 이 두사람의 넋이 새가 되어 돌아 왔는 데 바로 부엉이의 전생이라 한다.
  이 부엉이 부부는 전생의 버릇대로 꿩, 닭, 오리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여 그 고기를 자기 집에 쌓아 두었다. 어느 날이를 발견한 어느 사냥꾼이 큰 횡재라 하고 기뻐하며 훔쳐 갔다. 거듭 훔쳐 갔지만 한두 마리는 늘 남겨 두고 가져 갔기 때문에 수를 셈할 줄 모르는 부엉이는 본래 그런 줄 알고 계속해 열심히 사냥해 저장하였다. '부엉이 샘'이란 그래서 생겨 난 말이라 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냥꾼은 부자가 되었고 이를 알 리 없는 부엉이는 지금도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으며, 바보처럼 좋다고 '부흥! 부흥!' 대를 이어 소리치고 있다 한다. 암컷이 '부흥!'하면, 수컷은 '걱정없다. 부흥!'하고 화답하며 살생을 반복하는 동안 사냥꾼만 더욱 호의호식..... 그래서 마침내 어리석은 이 새를 '부흥이 - 부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 새겨 들어야 할 경구(警句)로 설명하길 사람에게 재산은 필요한 것이고, 돈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 할 것이다. 없을 대를 위해 저축하는 것도 사람만이 아니라, 다람쥐도, 딱따구리도 겨울철을 위해 먹이를 저장한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이다. 살아 가는 데 있어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분수에 맞게 알맞게 지녀야 한다. 더구나 재물의 내용은 맑고 깨끗한 것이어야 한다. 품성이 탁한 자는 사람을 죽게도 하고, 재산을 훔친 후 암매장하거나 죄의 흔적을 감추어 완전 범죄를 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더구나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공명정대하고 부정이 없어야 한다. 누구나 잠간 왔다가 꿈결인 듯 곧 떠나는게 인생이며 천년만년 사는게 아니다. 공수래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다. 과욕을 부리다 몸도 마음도 상해 수명을 줄이며 만백성의 조롱을 당하는 환난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많이 불려주어 형제간에 탐욕의 불화를 싻트게 하고 골육상쟁에 이르게 하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는, 적으면 적은대로 베품의 덕행을 행하라는 것이다. 저축은 목적이 아니다. 쓰기 위해 잠시 보관하는 방법이다. 저축은 많이 했는데 어떻게 써야 값진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는다'고 한다.󰡐저축은 베품으로 인생을 꽃피우는 준비 과정󰡑이라는 것이다. 부엉이를 반면교사로 생각 타산지석을 삼으라는 뜻이다.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지녀 도둑에게 기회를 주지 말고 베품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가라는 것이다.󰡐부엉이의 부흥' 은 약한 생명을 도살하며 그 희생위에 이루어진 살생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엉이가 열심히 일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생명의 살상이 뒤따른다는 이치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사에서도 곱씹어 볼 이야기라 하겠다.
  동물의 약육강식은 먹이사슬에 의한 자연법칙이다. 그러나 도를 넘어 지나치는 것이 문제라는 뜻이다.  
5.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 
앞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하면󰡐부엉이 올빼미 과의 치효' 를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보는 오래된 문화적 관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는 맹금류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병아리를 물어 간다' 하나 해 질 무렵이면 모두 닭장에 집어 넣기 때문에 낮에 자고 황혼 후에 활동하는 부엉이를 혐오새로 보는 것은 반역자의 오명을 부엉이에 투영한 인간의 상징적 편의성일 뿐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수리부엉이를 귀 쪽 위에 뿔이 난 듯 하다하여 각치(角鴟)라 하고 이를 도깨비 얼굴에 비유하여 구계(鴝名鳥)라 하며, 귀가 뒤로 젖혀진 늙은 토끼 같다며 노토(老兎), 죽음과 도둑의 인상을 준다는 기사(鵋斯鳥), 때로는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낸다하여 곡록(轂轆)의 매(鷹), 보라매를 부른다하여 호과응(呼咵鷹), 밤중에 사냥하는 매라 하여 야식응(夜食鷹) 으로도 부른다. 공동묘지에서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 귀신의 곡성, 또는 얼을 빼앗는 듯한 웃음소리, 전염병으로 죽은 이들의 시신을 실어 나르는 달구지의 수레바퀴 돌아가는 소리처럼도󰡐부엉이의 울음' 이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민속에서 재수없는 새 불상조(不祥鳥)라 부르게 되었다 하나 이것은 사람의 상상력이지 부엉이의 실체는 아니다. 부엉이에게 인간의 내면세계를 투영한 것이다. 부엉이의 재앙을 물리치는 부적에󰡐퇴효신부(退梟神付)' 가 있다. 심리치료법이다.  
어미를 잡아 먹는 새인가? 
중국의 <둔재한람(遯齋閒覽)>에는 부엉이를 어미를 잡아먹는 불효새로 매도하고 있다. 이야기 인즉, 깊은 산중 한 암자 뒤켠에 고목나무가 있는데 둥지를 틀고 새끼를 8~9마리 낳아 기르던 중 아비새가 사냥꾼에 희생되어 어미새 혼자 먹이를 정신없이 물어다 먹였다. 새끼가 거의 다 자랐을 무렵 어미새는 지쳐서 관목 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러나 새끼들은 극성스럽게 쫓아 다니며 먹이를 독촉 하였다 한다. 어미는 더는 지쳐서 달아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숨이 끊어지자 새끼들은 죽은 어미가 먹이인 줄 알고 달려들어 그 살을 찢어 뜯어 먹었고 나중엔 부리와 발톱 깃털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한다. 살모사는 어미를 잡아먹는 뱀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나 현대에 와서 잘못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악어가 새끼를 잡아먹는다. 호랑이가 새끼를 잡아먹는다는 것도 집을 옮길 때 손 대신 입으로 물어 옮기는 것이라는 사실은󰡐다큐멘터리' 기록영화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조선 왕조 실록의 부엉이> 
<조선 왕조 실록>에 왕궁에 들어와 운 부엉이에 대한 기록은 매우 흥미롭다. 세종때의 6차례 범궁이 가장 많았고 세종은 미신으로 생각 해괴제를 지내라 하면서도 잡아 없애라 하였으며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세조 이후에는 아예 실록에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一 태조 7년 12월(권15) ․ 효성불상(梟聲不祥) 1회 성
1) 부엉이가 북원에서 울어 상왕 북량정으로 거쳐를 옮겼다. (1392~1398년) 
二 정종원년 7월(권2) ․ 효성불길 2회
1) 부엉이가 매일 밤 전각 위에서 울며 솔개(鳶)와 싸웠다. 스님들을 불러 독경하고 제사를 올려 재앙과 여역을 물리치길 빌었다.
2) 정종 2년 7월(권5) ․ 오효양추(烏梟禳追), 스님을 초대, 갈가마귀떼와 부엉이 올빼미 무리를 물리치는 제를 올렸다.
三 태종조 7~15년(권14, 권21, 권30~1418) 4회
1) 태종 7년 9월(권14) ․ 복병무언(鵩鳴巫言)
왕의 침전 지붕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침전을 옮겼으나 4~5일 계속 울었다. 무당이 죽은 왕비(故靜妃)의 말이라 하면서 왕위를 넘기라(位傳云) 하였다. 이에 따라 세자에게 위를 전하려 하였다.(之由王位世子傳)
2) 태종 11년 정월(권21) ․ 효성불상(梟聲不祥)
부엉이가 창덕궁 서편에서 울었다. 왕명으로 해괴제를 올렸다. 정전을 피해 동문 밖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3) 태종 11년 2월(권21) ․ 효명제양(梟鳴祭禳)
부엉이가 창덕궁에서 울었다. 왕명으로 해괴제(解怪祭)를.
4) 태종 15년 7월(권30) ․ 효명불상(梟鳴不祥)
부엉이(鵂鶹)가 경복궁에서 울었다. 왕은 창덕궁으로 감.
四 세종조 15~24년 6회 (1418~1450 제위)
1) 세종 15년 2월(권57) ․ 효성양제(梟聲禳祭)
부엉이가 도관서(䆃官署) 지붕에서 울어 해괴제를 행함.
2) 세종 15년 10월(권62) ․ 효명기양(梟鳴祈禳)
부엉이가 홍례문에서 울어 해괴제를 행했다.
3) 세종 16년 7월(권65) ․ 효명기양
부엉이가 건춘문 홍례문에서 울었다. 해괴제를 지내고 임금이 부엉이 올빼미 등을 잡아 없애라 하였다
4) 세종 17년 11월(권70) ․ 효명기양
부엉이가 홍례문(弘禮門)과 근정전에서 울어 해괴제를 행했다.
5) 세종 17년 12월(권70) ․ 효명기양
근정전에서 울었다. 해괴제를 지냈다.
6) 세종 24년 8월(권97) ․ 효명해괴(梟鳴解怪)
예조에 전지를 내려 앞으로 궐내에서 치효류가 울 때에는 그 운 곳에서 해괴제를 올려 울음을 멈추게 하라 하였다.
五 세조조 2년(병자년) 1회
●문종, 단종 때는 한 차례도 대궐에서 부엉이가 울었다는 기록이 없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니 하늘은 마땅히 부엉이로 하여금 그 조짐을 예시해야 했는데 아무런 일이 없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1) 세조 2년(권3) ․ 효명의 괴((梟鳴之怪)
서운관(書雲觀)과 홍례문(弘禮門)의 부엉이울음에 대해 세종조 24년의 전례에 따라 운 곳에서 해괴제로 쫓아 버렸다. 이후 세조 임금은 해괴제도 폐지하여 없앴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부엉이가 울었다고 해괴제를 거행한다는 것은 하늘을 조롱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명백해지는 것은 대궐에 들어와 부엉이가 우는 것은󰡐왕위를 찬탈하려는 반역설 민속을 상징' 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는 유교적 합리주의로 생각할 때 미신행위로 판단하여 폐지한 것이라 하겠다. 1456년의 일이다(인간이란 혁명가도 자신이 혁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송나라 천문 점성서 <자미두수전집(紫微斗數全集)>, 希夷 진도남 저)에는 임금된 자가 나라를 잘 통치하지 못하고, 폭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면 천도를 거스리는 경고로 자연의 이변(천변, 지변, 인변<증보문헌비고 상위고>에 자세한 기록이 있다)을 통해 반성의 기회를 주고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임금을 교체하거나 여러 대를 거쳐 가능성이 없으면 5성취(五星聚 : 5성이 십자난 한 줄로 동시에 보임)나 7요제원(七曜齊元 : 해와 달, 5성이 동시에 보임)으로 왕조를 교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는 새 왕조의 시작을 뜻하는 하늘의 서조(瑞兆)라 하였다.
부엉이가 왕궁에 들어와 우는 것은 반역의 시도가 있음을 부엉이를 통해 하늘이 알려주는 것이며 왕도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반성하고 점검해 보라는 고대의 풍속이 점서에 전해진 것이다. 현대의 대통령도 임기제의 국왕으로 착각하는 정서가 남아있으며 충성의 대상이 국민이 아닌 권력자로 오도하고 있는 일부 세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태조실록 권15, 12월 부엉이가 울어 상왕이 북량정으로 이거. 효성불상)
고대에 절대적 존재로 여겨졌던 하늘이란 대체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임금은 왕권을 하늘로부터 수여 받았다는󰡐왕권신수설' 은 그 전통이 문화속에 남아있어 오늘에 와서도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대통령은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하늘이 내는 것이다' 고 공공연히 주장한다.󰡐민주주의' 란 국민이 주인이란 뜻인데, 주인이 주인인 줄 모르고, 어쩌면 주인이 주인이란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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