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하지 않은 웹브라우저의 경우 자바스크립트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환상과 호기심, 상상력을 끊임없이 펼쳐볼 수 있는곳...섬진강도깨비마을

홈 도깨비창고 > 도깨비 자료

도깨비 자료

제목 : [ 설화 ] 김공선정지비(퍼옴)
작성자 촌장  
글정보 작성일 : 2011년 07월 13일 01:56 , 읽음 : 1003

이미지 1:김공선정지비(퍼옴)


착한 도깨비선정비

원주에 도깨비를 기념하는 비석이 서있다 하면, 세월이 지나 아는 사람은 알고 있으려니와 모르는 사람은 잘 믿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원주 남쪽 개운동(開運洞) 원주 고등학교를 지나 ‘궁만(弓滿)이'로 들어가는 모퉁이에 두자폭에 넉자 높이의 화강암 비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자리에 휴맨시아 1단지 아파트가 들어 서서 그  후문 경비소와 어린이 놀이터 사이조그만한 화단에 말없이 착한도깨비 비석이 서 있다.

‘金公善政之碑’(김공선정지비)라 크게 새겨져 있어 무심코 볼때는 아마 김 아무개라는 벼슬살던 사람의 선정비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하게 보면 ‘김공’ 다음에 아무개라고 이름 두자를 쓰고 선정지비라 할것이지 이름도 없이 ‘김공선정지비’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거리에서는  실없는 소리로 김씨를 보고 도깨비성(性)이라는 말이전해 오고 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한 도깨비의 비’라 할 것을 ‘金公善政之碑’라 했고 한다.  여하튼 전해내려 오는 말에 의하면,

‘구만이'에 살고 있는 정태형씨의 삼대조에 정 병사(兵使:병마절도사))가 살았다고 한다. 정병사가 소년시절 글 공부를 할 때, 가끔 도깨비가 나타났는데  도깨비는 소년이 혼자서 공부하는 방이거나 혼자서 거닐때만 나타나 엎드려 절하며 가로되 “병사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정중히 하였단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철없는 소년도 아마 내가 자라서 병사님이 되는가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전병사가 스무살의 청년으로 자라 큰  인물이 되어야 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금강산에 들어갔다. 사사 받을 도사를 찾아가서 소년시절의 도깨비 이야기를 하고 연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도사의 말씀이 “그대가 병사 벼슬은 꼭 할 것이다. 그런데 목사를 먼지 지내고야 병사가 될 걸세. 그러나 비수를 꼭 몸에 품고 다녀야 하네.” 이 말을 들은  김병사는 지녔던 명주 한필을 비수와 바꾸어가지고 도사에게서 무술을 배웠다.

한해는 잘 지났을 무렵이 되어 도사가 하는 말이 “이제 그만했으면 쓸 만하고 또 지금이 네가 나설 때 인 즉, 잠깐 고향에 들렸다가 서울로 가게. 그곳에 가면 무슨 일이든 자네가 출세할 길이 나서네.”라고 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몇일 후 개나리 봇짐을 진 청년 정병사가 원주에 들어섰다. 어두워 가는 저녁길을 막 ‘구만이’에 들어서는데 키가 장승같은 놈이 앞을 막더니 “병사님! 이제 오십니까”하고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고 청년이 묻자, “저는 김공이 올시다.”한 후 일어나서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사라졌단다. 집에 들렸던 정병사는 다음날로 서울을 향해 떠났다.

마침, 서울의 조정에서는 제주도 목사 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목사로 가는 사람은 웬일인지 부임하기 바쁘게 죽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섯 사람의 목사가 부임 해 가서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래서 제주목사 되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다.

정 병사 청년은 곧 제주 목사를 자청 해 임명이 되어 몇 명의 길잡이를 데리고 배에서 내리니 제주관가에서도 신관사또님이 오신다고  정중하게 마중했다.  안내를 받아 관가에 들어간 정 목사는 자기를 마중나왔던 관원들의 태도가 수상하다 생각하고 잠자리에서도 자지않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별안간 수명의 괴한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중 우두머리되는 놈이 하는말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탐라국사람은 예부터 육지에서 오는 지배자를 싫어한다. 요새 육지에서 오는 지배자들을 모조리 우리 손으로 죽였으니 그대도 오늘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단다.

듣고 있던 정목사는, 갑자기 품었던 비수를 꺼내어 우두머리의 가슴팍에 던졌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 우두머리가 그 자리에 쓰러지자 따라온 부하들이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고 한다.

그 후로 정목사는 그곳에서 치적을 쌓은 보람이 있어 병사 벼슬을 얻었는데 새로 병사가 된 정병사는 내가 병사가 된 것은 역시 도깨비의 도움이라 해서 ‘김공선정지비’라는 도깨비 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 도깨비는 전설 같지만 실체적 비석이 있으니 종교적 관점이나 과학적 관점을 떠나 이 도깨비 비석을 잘 모시고  축제도 열어 보고 지금같은 어려운 시기에 소원을 빌어 보는 것도 좋치 않을까 생각 해 본다. 필자도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나 이곳 착한도깨비를 촬영 하러 간날이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발표 되는 날이여서 선정비에 2018동계올림픽이 우리나라 평창에서 개최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어떤 지역정부에서는 실체도 없는데 도깨비박물관을 만들고 도깨비 축제를 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도깨비 이야기는 또 원주시 유만동에도 전 해 내려 오고 있다.

과거 유만동에는 마을어구에 버들이 많아서 버들만이 또는 유만동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박진사가 살았다고 한다. 서울살다 이곳으로 온 박진사댁은 원주 평원동에 사는 이진사댁과 친분이 있어 자주 오거니 가거니 했단다. 이때, 유만동에서 평원동 사이는 민가가 없는 수풀 사이었다고 한다.

중간에 영경소가 있었는데 그때는 낮에 다니기도 무시무시했던 모양이다. 박진사가 하루는 아버님 심부름으로 이진사댁에 혼자갔다가 어두워서 돌아오는데 숲 속에서 패랑이를 쓴 장정들이 나타나더니 박정승 나리께서 보행행차가 웬일이십니까. 저희들이 가마를 대령하였습니다 하고 가마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돌아온 아들에게 근심하여 기다리던 부모가 묻기를 어떻게 네가 혼자 올 수 있었더냐 하여 지나온 이야기를 털어 놓은즉, 부모가 문을 열고 보았는데 사람은 없고 사인교 한채가 뜰 앞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사인교도 없어지고 다 떨어진 미투리 한짝만이 있었다고한다.

박진사는 그 후 도깨비 말대로 정승벼슬까지 지냈다고 전해 져 오고 있다..




   목록으로   

댓글작성


다음글 다음글 [기타] 부엉이방귀
이전글 이전글 [일반] 강항의 혹부리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