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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자료

제목 : [ 기타 ] 강항의 혹부리영감2
작성자 촌장  
글정보 작성일 : 2012년 07월 12일 17:40 , 읽음 : 1061
소화(笑話) 중 모방담(模倣譚)에 속하는 설화. 한 혹부리영감이 도깨비를 속여 자기 혹을 떼고 이를 흉내낸 다른 혹부리영감은 도리어 앞서의 영감의 혹까지 붙이게 되었다는 이야기.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영감>․<혹부리영감과 도깨비> 등으로 불린다. 문헌으로는 조선조 선조(宣祖) 때 사람 강항(姜沆)의 문집인 《수은집(睡隱集)》에 <류계(瘤戒)>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혹부리영감이 어느날 도깨비들을 우연히 만난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도깨비들이 그 노래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자 영감이 혹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이에 도깨비들은 영감의 혹을 떼고는 대가로 많은 재물을 주어, 그 영감은 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이웃의 또다른 혹부리영감이 앞서의 영감처럼 도깨비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도깨비들이 노래가 나오는 곳을 물었고, 영감은 자기 혹을 가리키며 그 곳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이에 도깨비들이 거짓말쟁이라 하면서 다른 혹마저 그 영감에게 붙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중의 영감은 도깨비로부터 망신만 당하고 혹 하나를 덧붙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의 기본구조는 선행자(先行者)의 행위를 후행자(後行者)가 모방하여, 선행자가 행운을 얻는 반면 모방자는 불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행운을 얻고자 하는 것은 간혹 성공할 수는 있어도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목판본. 4권 4책. 규장각 도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658년(효종 9) 문인 윤순거(尹舜擧)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송시열(宋時烈)의 서문이 있으며, 시 ·부(賦) ·전(箋) ·계(啓) ·제문 ·소 ·서(序) ·기(記) ·서(書) ·잡저 ·행장 ·간양록(看羊錄) ·부록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청종사회재소(請從祀晦齋疏)>는 이언적(李彦迪)을 문묘에 종사하여 사표(師表)로 삼기를 청한 것이며, <창의사김공행장(倡義使金公行狀)>은 김천일(金千鎰)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별책에 있는 <간양록>의 사료적인 가치가 가장 크다. <간양록>은 저자가 1597년(선조 30) 포로가 되어 일본의 복견성(伏見城)에 억류되어 있을 때에, 그곳의 형세를 몰래 적어 조선에 보낸 기록들을 모은 것으로, 일본에 있으면서 쓴 <적중봉소(賊中封疏)>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과 전란을 겪은 사실을 기록한 <섭란사적(涉亂事迹)>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일본의 정세와 관직제도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문집총간》에 영인본이 있다.
[출처] 수은집 [睡隱集 ] | 네이버 백과사전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2년 8개월간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한 강항 선생은 일본 승려에게 들었다면서 우리가 잘 아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를 썼네요!우화 형식으로 쓴 이야기 중에는 도둑...

여송은 동해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이다. 지역이 치우쳐 있는데다 물살 또한 빠르고 급한 관꼐로 백성 중에 혹이 난 사람이 많다. 어느 사람이 이마에 혹이 생겼다. 거의 항아리만한 크기의 혹이 머리를 눌러 일어날 수 없게 되자, 처자는 부끄럽게 여겨 그를 쫓아내버렸다. 쫓겨나 산속에서 지낸지 며칠이 되었다. 한밤중이 되자 산도깨비들이 떼를 지어 북을 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두려운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추었다. 도개비들이 그를 보고서는 서로 혀를 내두르며 말하였다.
“이상하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산속에 이처럼 같이 놀만한 좋은 벗이 있다니.”
그리고는 계속하여 북을 쳐대니 그도 따라서 계속 춤을 추었다. 먼동이 틀 무렵 도깨비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 도깨비들은 사람과 달라 해가 뜨고 나면 함께 있을 수 없다. 내일 밤 꼭 다시 오려고 하느넫 그대도 다시 올 수 있겠는가?”
하니, 그도 그러마고 하였다. 도깨비들은 세 번씩이나 반복해 물었고, 그도 그때마다 승낙하였으나 도깨비들은 그래도 미심쩍은지
“사람의 마음은 끝까지 믿기 어려우니. 그대의 혹을 떼어다 약속의 징표로 삼자.”
하고 즉시 혹을 떼어가지고 갔다. 그는 기쁘고 다행스럽게 여겨 부리나케 달려서 집으로 돌아오니 본래의 모습으로 되어 있었다. 처자는 반갑게 맞이하였고 이 소문은 이웃 마을에까지 자자하게 퍼졌다.
그 마을 사람중에는 그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혹이 나 있는 사람이 또 있었다. 그는 산에서 혹을 떼고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망설이다 찾아가 물었고, 사연을 모두 듣고 나자 매우 기뻐 하였다. 곧장 혹을 데고 온 이가 묵었다는 산으로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도깨비들이 과연 북을 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다가왔다. 그는 미리 일어나서 들은대로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도깨비들이 매우 즐거워하며
“신용이 있군.”
하고 함께 실컷 놀다가 헤어졌다 .떠나면서 그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약속을 어길까 해서 혹을 떼어가 징표를 삼았는데, 자네가 이미 왔으니 혹은 다시 돌려주겠네/”
하고 즉시 앞서 가져갔던 혹을 그의 이마에 붙여놓고 가버렸다. 그 혹의 모양은 마치 두 채의 집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대성통곡하면서
“ 한 개의 혹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둘이나 되다니!”
하고는, 드디어 골짜기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이상은 일본 스님 순수좌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살아돌아왔기에 이런 태평한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고, 나 스스로도 세상에 나갈생각을 끊은지가 오래되어 일찍이 벼슬했던 사실까지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가까운이들이 더러
“그대가 벼슬에 뜻을 끊은 것은 환관이 여자에 대한 마음을 끊은것과 흡사하니, 차라리 장차 벼슬을 구하여 버림받은 치욕을 씻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고 권한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기를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누가 곧바로 주겠는가. 전날의 치욕도 아직 씻지 못한 형편에서 도리어 다시 새로운 치욕을 얻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이것은 혹을 떼려다가 혹 두개를 붙인 사람의 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하니 권하던이가 크게 한숨을 쉬고 가버렸다.

어디 많이 듣던 이야기 같지 않소? 아마도 혹부리 영감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소.
원저자는 강항이오.출처는 고전일기의 즐거움이란 책이오. 한문공부하려 읽은 것이 아니니 원문과 대조는 안해보았소.
  
책명] 간양록 / 임진왜란 때, 강항(姜沆)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서 보고 들은 일본의 풍속, 지리 및 군사 정세 등을 기록한 책. 1668년 간행되었으며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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